작년 이맘 때 뉴욕에 히스패닉계 몇몇 부인이 구원을 받고 그중 앙헬라라는 자매를 통해 도미니카에 전도여행을 갈 수 있게 되어 김창규 목사님 일행이 다녀 오셔서 도미니카에 교회가 세워지는 은혜를 주님께서 베풀어 주셨습니다.
올해 초, 도미니카 김춘권 선교사님이 뉴욕에 오셨을 때, 종들이 모여 기도하 시면서 "다음은 푸에토리코(Puerto Rico) 차례다."라고 말씀하시고 잠시 모여 기도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우리들은 기도를 잊고 지냈지만,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잊으시지도 않으셔서 스페니쉬교회 에 한 영혼을 붙여주셨습니다.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 구원받은 랄리 자매가 일하는 네일가게에 브루닐다라는 부인이 찾아왔는데 랄리 자매가 잘 못부르는 찬송이지만 흥얼거리며 찬송을 부르며 일하는 것을 보고는, 무엇때문에 그렇게 기쁜지 묻게되어 교제가 되었습니다. 그 후 주님이 그 심령을 스페니쉬교회로 연결시켜 주시고 교제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 구원받은 자매가 바로 푸에토리코 출신이였고 많은 가족들이 푸에토리코에 살고 있었습니다.
브루닐다라는 자매님 역시 사마리아 여인같은 삶을 살아오며 소망없이 지내던 분인데 구원을 받고 참 소망을 얻게 되었던 것을 볼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그 자매님과 같이 소망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심령이 푸에토리코에 있을 것을 생각할 때, 한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도 흘러 들어오는 것을 느낄수 있습니다.
주님이 복음의 열린문을 우리 앞에 두심을 감사드리고 이번 푸에토리코 전도여행 을 통해 주님이 힘있게 일하실 수 있도록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기간 : 4월 28일(월) ~ 5월 3일(토) 강사 : 김창규 목사
푸에르토리코에 대한 국가정보    수도 : 산 후안 인구 : 3백 7십만명 면적 : 8900km2(한반도의 刻?1/20) 주요도시 : 산 후안, 쿨레부라 주요언어 : 스페인어, 영어 종교 : 카톨릭(85%), 개신교
개요
카리브해 지역에서 가장 큰 섬들중에 하나인 푸에르토리코는 산, 지하동굴, 산호섬, 하얀 백사장, 섬내의 대부분의 식수를 공급하는 열대우림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또한 잘 개발되어있는 곳이기도한데 북적이는 산업지역, 화려한 리조트와 카지노가 있는 산 후안이 바로 그 곳이다.
도시와 자연의 유혹이 어울어진 푸에르토리코는 대부분의 섬주민들이 미국에 거주하거나 그곳에 친척이 있다. 이 지역의 언어는 두 개의 문화융합의 용이함을 상징한다. 영어과 스페인어가 모두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스페인어가 더 일반적으로 쓰인다.
물론 미국과 가까운 유대를 지니고 있고 카리브해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을 지라도 산 후안의 범죄문제는 심각한 편이다. 또한 공기오염과 식수부족이 다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겨울에 이곳의 역사적 유적지나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로 인해 길게 줄을 잇는 광경도 관관객들이 감수해야할 문제이기도 하다.
역사
젊은 귀족 후안 폰세 데 레온와 함께 1493년 11월 콜롬부스는 푸에르토리코에 도착하게 되었다. 금이 묻혀있다는 얘기를 들은 폰세는 보리쿠엔을 식민지화하게 되고 1508년 그는 산 후안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인 카라파라에 최초로 정착지를 세웠다. 1년후 스페인의 왕는 그로하여금 이 섬의 최초의 지사로 삼았는데 1521년 폰세는 정착지를 산 후안으로 옮겼다. 왜냐하면 카라파라는 정착하기엔 불결한 곳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해 폰세는 플로리다 정복에서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된다.
푸에르토리코는 라틴아메리카로 향하는 전략적인 입구로써 스페인으로하여금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의 공격을 ??중요한 전초지 역할을 했다. 미국과의 전투에서 패한 스페인은 1898년 푸에르토리코를 미국에게 양보하게 되었고 주민들은 1917년 독립적인 상원과 하원을 소유한 미국의 시민이 되었다. 1948년 殼零袈?독자적인 지사를 선출하였는데 지사는 내각과 대법원을 구성할 수 있게 되었다. 1992년 푸에르토리코는 자발적인 미국의 연방이 되었다. 이 섬은 미국에 경제적 정치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로 지속적인 논쟁이 일고 있다. NPP당은 푸에르토리코가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는 것을 지지하고 PDP당은 연방상태의 지속을 주장하고 있다. 1991년 푸에르토리코의 미래를 결정하는 국민투표에서 유권자들은 PDP당의 정책을 거부하고 미국의 주로 남는 길을 선택했다.
푸에르토리코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오래된 건축물과 콘크리트 건물들, 패스트푸드와 전통음식들(카리브해의 복합적인 문화가 담겨있는)을 대립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푸에르코의 수도 산 후안에서만 관광을 하게 된다면 진정한 푸에르토리코의 문화를 체험할 수 없을 것이다.사람들은 비록 친절하고 호의적이지만 마약과 실직이 연관된 범죄가 끊이지 않으므로 각별히 조심해야하는 곳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