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어떤 형제님을 통해 저를 찾아온 목사님과 만나 교제해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았 는데, 그분이 `내가 구원받고 보니, 내 아내가 평소에 늘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해 서 그분의 부인을 만났는데, 자신이 구원받은 간증을 하셨어요. 이 부인은 늘 목사의 아내로 서 늘 부족한 것 같고,뭔가 더 해야할 것같아서 틈만 나면 열심히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면 서 고통하면서 애쓰는 삶을 살다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 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니라(마가10:45)`는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이 자신을 섬기려고 오셨고 자신의 대속물이 되셨음을 깨닫고 말씀앞에 모든 짐을 내 려 놓았다고 했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세든 집에 도둑이 들면 집주인이 배상하는 법이 있습니다. 중국에는 가족중의 한사람이 죄를 지으면 다른 가족이 대신 형벌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왕 실,귀족들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잘못을 하면 매를 대신 맞아주는 아이가 있답니다. 몇몇 나 라에서 대신 형벌을 받는 대속에 관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율법에서는 `눈 에는 눈, 이에는 이`로서 죄를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 케하거든 찍어 내버리라(마태5:30)`는 말씀대로 한다면 우리 지체는 남아 있을게 없을 것입 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죄인들을 심판하기를 원하시고, 그 형벌은 사형에 해당하다고 말씀하 십니다. 그런 사람의 죄를 사람이 대신할 수 있겠습니까?  죄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할 자격이 안됩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죄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없으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대속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 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53:5)`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 모든 약한 것을 지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은 우리에게 형벌 내릴 수가 없고, 하나님의 법이 나를 가둘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의 법 앞에 우리는 떳떳하고 완벽하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도 대신 죽어줄 사람이 없 는데 내 대신 형벌을 받아 주셨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떳떳하고,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의인 이다. 옳다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3:13)`에서 속량은 돈으로 말하면 탕감을 뜻합니다. 이제 십자가를 보면 `아! 예수님이 나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아서 내가 저주 받을 것이 없구나, 나 는 죄가 없구나, 의인이구나`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 앞에서 `죄를 용서해주 시옵소서`하고 죄를 씻어달라고 울고 불고한다면 뭘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 이 또 십자가에 매달리라고 하는 겁니다. 구약에서는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흠없는 양을 한 마리 끌고 와서 그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키고 제사장이 그 양을 잡아 피를 번제단에 바름으로 죄를 사했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을 때마다 양이 죽어야했는데,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기  때문에 모든 죄를 짊어질 대속물로서의 예수님을 나타내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생명의 떡`,`생수`,`남편` 등으로도 말씀하시지만 가장 적합한 대명사는 바로 `대속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무한한 능력이 있었지만, 우리 대신 이땅에서 땀을 흘리시고, 수고하시고 연약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에 서 체휼은 우리과  같은 육신을 지니셨기에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것 을 체휼이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겉옷은 나눠가지고,속옷은 제비뽑아가서 벌거벗 은 수치를 우리를 대신해서 당하신 것입니다 이십자가 앞에와서도 `이 죄인을…`하면 어쩌 자는 겁니까? 몰라서 그래요. 하나님은 사랑이다 예수님의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 지셨다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마음에서 자신의 것으로 전달이 안되서 그런겁니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이사야53:11)`에서 예수 님은 지금 하늘나라에서 `내가 네 대속물이 되기를 참 잘했다`하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후회 하시지 않으십니다. 본문 말씀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사마리아 성을 아람군대가 둘러싸고 있어서 성을 드나들 수가 없어서 성안은 아이를 삶아 먹을 정도로 굶주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을 포위하고 있는 아람진에는 양식이 쌓여 있었는데, 성안에서 그곳으로 가면 죽임을 당하는 데, 성밖의 네 문둥이가 죽으면 죽지하고 아람진으로 갔습니다.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왕하7:5)` 에서 가면 아람군에게 죽을 줄 생각했는데, 가보 니 군인은 없고 양식만 쌓여 있었습니다. 이제 문둥이들이 일어나서 사마리아성에 가서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러 가서, 죽일 것  같은 아람군인은 없고 양식이 쌓였다고 복음 을 전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성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않은 것입니다. `매일 매 일 죄를 짓는데 어떻게 죄가 없어?`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 앞에 와보면 죄가 하 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앞에 와 보니 대속물되신 예수님이 계시더라는 것입 니다. 사람들은 한치 앞을 못내다 보는데, 말씀을 통해서 우리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사야는 800년후에 오실 예수님을 바라봤고,  하박국은 이스라엘 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아무런 열매도 없고,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가지만, 70년후에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내다보고 기뻐했습니다. 이처럼 구약의 사람들 은 앞을 내다보며 기뻐했는데,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사실을 믿기만하면 되는데도 모르고 못 믿는다면 부끄러운 것입니다. 보이는 것을 말하자면, 내가 컴퓨터를 선물받고도, `컴퓨 터하나 있었으면` 한다면 바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도 죄인이면 정말 봐도 못보고, 들 어도 못듣는 소경이요 귀머거리입니다. 좀 봐요 죄가 어떻게 눈보다 희게 씻어졌는지 좀 들어봐요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예수님의 우리를 대속해서 저주를 받았 다고 약속하셨쟎아요.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이 한번 심판한 것을 다시 물으시겠습니 까?  우리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지 않는다고 하셨쟎아요. 이 말씀을 펴 놓고 하나 님앞에 서는 것입니다. 이것을 모르니까 죄인이지요.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뿐아니라 슬픔,목마름,수고…… 이 모든 것에서 회복시키시는 분임을 기억하면서 십자가 앞에 나오면 더 은혜로울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