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선교회에서 알립니다

NOTICE

부천 대전도 집회 셋째날
2006-06-08
요한보음 11:17~44



성경을 읽으면 너무 신기하게도 내가 알지 못한 어떤 힘이 나를 끌고 있는 것을 봅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나사로를 살리는 장면에서 예수님과 마르다의 대화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병이 죽을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고 처음에는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어가고 있었고 결국 죽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었지만 그 믿음대로 되어지지 않자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이 믿음은 정확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절대 죽을병이 아니라고 하셨다면 죽지 않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은 형편이 바뀌어도 믿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받은 후 하나님을 믿는 것, 기도해서 응답받는 것은 막연했습니다. 기도해서 응답이 되면 좋겠지만 응답이 된다는 믿음이 없었다. 기도했고 응답이 와도 내 기도 때문에 응답이 온것인지 우연인지 다른 형제가 기도해서 응답이 온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불쌍해서 그냥 어떤 사람이 도와주는 것인지 정확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경남 장팔리에 전도사로 있을 때 대구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구까지 갈 여비가 없었던 나는 여비를 두고 하나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을 믿는 마음보다 내 생각에 가능성이 있는 형편 쪽으로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버스 타는 길 가까이에 한 형제님이 살고 계시는데 그 형제님께 가서 내 사정을 얘기하면서 여비를 얻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형제님께 형편을 얘기할 수 없었고  나를 믿고 있는 내 자신을 보자 내가 너무 초라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람을 의지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다짐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버스가 내 앞에 서서 문이 열렸고 내 주위에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지만 하나님이 타라고 하시는 것 같아서 버스를 탔는데 그 안에는 한 자매님이 계셨습니다. 자매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버스를 타고 가는데 서있는 나를 보았고 하나님이 전도사님 차비를 내주라고 하신다는 마음이 들어 버스를 세웠다고 했습니다.
대구로 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기도하면서 깜짝놀랐습니다.
만일 내가 대구로 오는 길을 찾아서 내 방법대로 왔다면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을 받을 수가 없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이 믿음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마리아와 마르다는 에수님을 원망스러워 합니다.
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마르다 마음에는 나사로가 죽어있었지만 예수님의 마음에는 나사로가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마르다에게 넘겨 주기위해 많은 대화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사막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아버지 마음엔 소망이 있지만 아들의 마음에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아들은 불평하고 이제 죽을 것이라고 단정짓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에는 분명히 소망이 있었습니다. 사막은 모래가 바람을 따라 움직여서 길의 모양이 자꾸 변해서 길을 잃을 때가 종종 있지만 지금 우리가 가는 길이 동쪽으로 정확하게 가고 있음을 아들에게 설명했습니다.
아들의 마음에는 아버지의 말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길을 가다가 무덤을 발견한 아들은 다시 한번 절망에 빠집니다.  “ 아버지 저기 저 무덤 보세요~ 우리도 저렇게 죽을 꺼예요” 그러자 아버지는 희색을 띄며 아들에게 얘기했습니다.
“아들아 이제 우리는 살았다. 잘 생각해 보거라 저 사람들이 길을 잃어 죽은 것은 사실이지만 저 사람들이 스스로 무덤을 파고 죽지는 않았단다. 누군가가 무덤을 파서 저들을 묻어 주었을 것이다. 이제 마을이 가까워 졌다는 증거란다.”
아버지 마음에는 소망이 있었다. 죽을것이라고 단정 지었던 아들의 마음에 소망이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받아 들여지자 아들의 마음에도 소망이 생겼습니다.

믿을 만한것도 믿지 못하는 사람과 믿을 만한 것을 믿는 사람과 믿을 만한것도 믿고, 믿을 만하지 않은 믿기 어려운 사실을 믿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기 생각을 정당화 시키는 목사들도 많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해가지 않는 부분에도 일하십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르다처럼 믿으면 안됩니다.
내 생각에는 나사로가 살아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지만 말씀을 믿어 나사로가 살아난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오늘저녁 우리들과 함께 여기 계시고 지금도 하나님은 그런 능력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 내가 부활 때에 다시 살 줄을 믿나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을 얘기합니다.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마르다의 마음에는 예 그럼 오라비가 살겠습니다. 하는 마음이 없었다. 주의 말씀을 믿는 것보다 자기의 생각을 믿는 것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납득이 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내 마음에 받아들여서 같은 마음이 될 때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내 죄가 사해진 것을 믿는 것, 홍수를 내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외형적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하나가 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38년된 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고 했을 때 내 생각에는 걸을 수 없지만 주님이 일어나라고 하시면 내가 걸을 수 있겠구나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 생각을 더하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내 생각을 믿고 살아온 것을 뉘우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십시오. 참된 믿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셋째날사진보기★☆




(셋째날 저녁 박옥수 목사님 설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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