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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봉사단 나라 일꾼으로 키울 터"
2006년 04월호
"시대가 변하면서 신앙도 편의 중심으로 바뀌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상매체가 예배나 선교활동의 중요한 수단으로 등장하고, 주5일 근무제가 기독교문화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시대나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한다.'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유지돼야 합니다." 기쁜소식강남교회 박옥수(朴玉洙61)목사는 '죄 사함'과 '거듭남'을 통해서 신앙의 본질에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고 천국에 간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지나치게 회개를 강조하다 보니 교회에 나가면서도 죄 문제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예수의 보혈로 이미 죄 사함을 받은 상태이며, 따라서 죄나 회개가 신앙의 걸림돌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참 모습을 깨닫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메시지를 앞세워 40여 년동안 목회자의 길을 걸어 온 박옥수 목사는 잠시 실내체육관 등에서 개최하는 대규모 성경 세미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기쁜소식선교회와 국제청소년연합(IYF) 등을 통해 국내외 선교와 청소년 선도사업도 활발히 벌여 왔다. 그의 선교회는 지금까지 국내 220여 교회와 해외 200여 교회를 무대로 선교활동을 펼쳐 왔다. 1944년 경북 선산(현재의 구미시)에서 태어난 박 목사는 열아홉 살 때인 1962년 '하나님을 영접하는' 신앙체험을 했다고 한다. 3남2녀의 둘째아들로 태어난 그는 처녀 때부터 교회를 다닌 어머니의 영향으로 또래들보다 이른 나이에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신앙의 세계로 빠져 들기 전까지는 화투놀이와 과수원 서리에 재미를 들인 평범한 농촌 청년이었단다. 그는 19세 때 신앙체험을 계기로 외국인 선교사들이 대구에 세웠던 선교학교에 입학하면서 본격 신앙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무렵 만난 서양 선교사들은 그의 신앙과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큰 감동으로 다가왔던 '외국인 선교사들의 헌신적 삶' "1960년대 초만 해도 대구에는 외국인 선교사가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독실한 신앙을 토대로 성경의 가르침 그대로의 삶을 사는 것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본받을 데가 참 많은 분들이었죠. 목회자가 된 뒤로도 내가 과연 그때 그분들이 보여 준 만큼 진실되고 헌신적인 삶은 살고 있는지 돌아볼 때가 많습니다" 1971년 외국인 선교사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976년 기쁜소식선교회의 전신인 한국복음선교회를 창설했다. 이 선교회는 지금까지 700여 명의 전도자를 훈련해 파송했고, 국내외 300여 곳에 교회를 세웠다. 박 목사는 1986년 부산 대전도집회를 시작으로 서울 · 대구 · 인천 · 대전 · 광주 등을 오가는 대도시 전도집회를 해바다 개최하고 있다. 유교적 분위기에서 자란 박 목사는 어려서부터 고집이 강했다고 한다. 이러한 성격은 그를 교회 안팎의 문제를 놓고 웬만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목회자로 만든 배경이 됐다. 이런 일도 있다. 대구에서 사역할 때 한 장로가 그의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했다. 이 장로는 재력과 권세를 배경으로 교회 운영을 좌우하려 들었다. 담임 목사에게 번듯한 교회 건축과 미국유학을 약속할 정도였다는 것. 목회 성공의 지름길이 눈앞에 펼쳐진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신앙과 세속의 경계선에서 적당히 타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키지 않더군요. 교회마저 세속적으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그 장로를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이 서면서부터 정면대결에 나섰습니다.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매일 장로와 싸우다시피 했죠. 결과가 어떻게 됐겠습니까? 그 장로는 교회를 떠났고, 그가 약속했던 교회 건축이나 유학은 한 순간에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죠. 하지만 그러한 것들이 아깝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 목사는 스스로 결론 내린 사안에 대해서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스타일로 통한다. 그것이 다수의 인식과 다르다고 해서 적당히 둘러 말하는 체질도 아니다. 근래 종교계 일각에서는 타 종교 간 교류 또는 통합 움직임이 일고 있다. 개신교 목사와 성공회 목사가 서로 담임교회를 바꿔 가며 설교하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박 목사는 "신앙의 본령에서 보면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라며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다른 종교끼리 서로 배척하지 않고 이해하며 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본격적인 교류나 통합은 무리라는 것이다. 각각의 신앙적 본령에서 이탈(그는 이것을 '변질'이라고 표현한다)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교류나 통합은 불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본질을 훼손한 가운데 진행되는 교류나 통합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박 목사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구제활동'에 대해서도 보수적 견해를 갖고 있다.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그렇게 계속 도와 주다 보면 의타심만 키워 줄 수 있기 때문에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깊은 생각 없이 금전적 도움을 주고는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정답이 아님을 깨닫게 됐다"고 말한다. 도움받는 사람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자립심을 키워 주는 '전략'속에서 행해지는 것이 진정한 구제라고 믿는다. 이러한 고집과 소신 덕분에 박 목사는 "애써 힘들게 목회하려 든다"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고 한다. 때로는 좀 더 편하게, 타협해 가면서 목회하라는 충고도 자주 듣는다는 것. 하지만 그는 신앙과 양심을 거스르면서 까지 타협하거나 소신을 굽히지는 않겠다는 자세를 지켜오고 있다. 타협이 가능하려면 사람이나 관행 따위에, 그것도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쪽에 스스로를 맞춰야 하는데, 목회자가 그런 모습을 보여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박옥수 목사는 가정을 중시하는 목회자로 통한다. 설교 때나 신앙상담 때면 되풀이 강조하는 메시지가 '가정의 소중함'이다. 이혼한 지 2년이 지나 교회에 새로 출석하기 시작한 여성 신도가 있었다. 박 목사는 그가 성격차이로 이혼했다는 것을 알고 남남이 된 남녀를 끈질기게 설득하기 시작했다. "헤어지고 나니 같이 살 때보다 좋더냐"는 등의 질문을 앞세워 당사자들을 압박(?)한 끝에 마침내 재결합을 성사시켰다. 교회를 전혀 모르고 지내던 남편이 충실한 신자가 됐음은 물론이다. "자신을 버려야 참된 신앙 가능" 박 목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참된 신앙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을 버린단느 것은 기독교식 표현으로 치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박 목사는 이러한 메시지를 전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였던 베드로와 가롯 유다를 예로 들고는 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다 이를 뉘우치고 회개합니다. 그는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 것을 회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 가운데 태어난 사람이었음을 회개한 것입니다. 나의 본바탕이 잘못됐으니 예수님을 부인하는 죄를 저질렀다는 것이죠. 그때까지의 자신을 그렇게 철저히 버리고 난 뒤 베드로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됐습니다. 가롯 유다고 스승을 팔아넘긴 죄를 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회개는 스승을 적의 손에 넘겨 목숨을 잃게 한 행위 자체에 한정된 것 이었습니다. 베드로처럼 자신을 버리지 않았던 것이죠. 그 뒤 유다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말았죠." 박 목사는 청소년들한테도 자신을 버리는 훈련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 열리는 국제청소년연합(IYF: International Youth Fellowship)대회를 그러한 훈련의 장으로 활용한다. IYF는 1995년 박 목사가 말썽꾸러기 미국교포 학생 한 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새사람'을 만든 것을 계기로 출범한 단체다. 앤디라는 이름의 이 학생의 변화를 계기로 이듬해에는 28명, 그 다음해에는 50명 '교포 문제아'를 고국으로 초청하는 형식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2001년 사단법인으로 발전한 IYF는 도기권 전 굿모닝신한증권 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다. IYF는 매년 두 차례 국내외를 오가며 세계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여름대회(월드캠프)는 외국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개최하고, 겨울캠프(글로벌 캠프)는 반대로 한국 학생들이 해외로 나가 진행한다. 청소년에게 강조하는 메시지 "부모님께 감사하라" "전 세계 젊은이들이 참석하는 IYF 세계대회는 '젊은과 도전' '교류와 연합' 등을 주제로 진행됩니다. 행사는 문화축제, 군부대 입소, 단축마라톤 등 다양한 프래그램으로 4주 동안 이어집니다. 행사차 방한한 외국 학생들이 우리의 아믈다은 자연은 접하고 산업시설 등을 둘러봄으로써 자연스럽게 한국 홍보요원이 되는 효과도 큽니다. 해외로 나가는 우리 학생들에게는 신앙을 깊이 하고 넓은 세상을 접하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키우는 소중한 계기가 되고요." 지난해 6월 서울에서 개최된 글로벌 캠프는 전 세계 45개국에서 2,300여 명의 대학생이 참여한 '청소년 국제교류의 장' 으로 언론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겨울캠프에는 1,400여 명의 대학새이 참석했다. 지난 2월 하와이에서 열린 두 번째 겨울캠프에는 지난해보다 400여 명 많은, 1,800명이 참석해 성확을 이뤘다. 박 목사가 캠프 참석자들에게 각별히 신경 써서 전하는 메시지가 또 있다. "부모님께 감사하라"는 것이다. 대학생들에게 이처럼 '평범한' 메시지를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고 한다. "교회 부근에 있는 하교 운동장에서 아침 운동을 자주 합니다. 운동을 끝내고 나오다 보면 아침 일찍 부모가 태워 주는 차로 등교하는 학생들과 마주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대부분의 학생이 자신을 데려다 준 부모에게 인사를 제대로 안 한다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거나 '조심해서 운전하세요'라고 인사하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피곤한 얼굴로 차 문을 닫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교문으로 들어가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더라고요. 피곤하니 부모가 차로 태워 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알아서 잘 운전해 돌아가시리라고 믿는다는 것입니까? 어는 쪽이든 제대로 된 모습은 아니죠. 자녀를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죠." 박 목사는 그러한 세대의 원인을 요즈음 청소년들이 자녀가 하나 아니면 둘뿐인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데서 찾는다.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해 주고, 가정생활이 자녀교육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현실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식 표현으로 치면 '자녀를 우상시하는 풍토'가 그래서 생긴다는 것이 박 목사의 주장이다. 어려서부터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 있다고 여기다 보니 부모에게 감사하는 훈련이 전혀 안 된 학생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그는 분석한다. 박 목사가 출범시킨 대학생 관련 단체에는 '대학생 해외봉사단'(IGC: IYF Goodnews Corps)도 있다. 대학생들을 해외에 1년 동안 내보내 선교와 봉사를 하게 하는 프로그램으로, 2001년 11명으로 시작해 올해로 5년째 접어들었다. 지난해에는 235명을 파견했고 올해는 700명이 새로 나갈 예정이다. 박 목사는 내년에는 1,000명 정도를 아프리카 등지로 파견할 구상을 하고 있다. 해외에 파견된 학생들은 선교활동 외에도 한국어 및 태권도 지도 등의 봉사활동도 벌인다. 봉사단은 교회에 등록한 학생과 일반 대학생을 절반씩 섞어 구성한다. 박 목사는 이들을 파견하기 전에 예의 '자신을 버리는 교육'을 실시한다. 합숙까지 포함하는 소정의 교육이 끝나면 해외에 1년씩이나 내보내도 될 지 평가한 뒤 봉사단을 최종 구성하게 된다. 박 목사는 해외봉사단은 몇 가지 점에서 기존 교회의 선교단과우선 길어야 한 달, 짧으면 10일 안 팎으로 짜는 단기선교가 아니라 1년간의 장기 체류를 원칙으로 한다는 점이다. 아프리카 오지 등으로 파견 국가와 지역을 다양화하고 있다는 점도 박목사가 손꼽는 대학생 해외봉사단의 특징이다. "학생들이 배치되는 국가에는 생활 환경이 열악한 탄자니아 · 에티오피아 · 짐바브웨 · 토고 등 아프리카 오지도 많습니다. 아프리카로 떠나는 선교사들의 대부분이 대도시에 거주하는 데 비해 우리가 보낸 학생들은 밀림에서 현지 주민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말라리아에 걸리는 것도 불사하며 자신을 비우는 삶을 체험하는 셈이죠. 그렇게 1년 동안 지내고 나면 현지 사람이 다 돼서 돌아옵니다. 아프리카 남동부, 탄자니아와 케냐 등지에서는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데, 배우기 참 어렵기로 소문난 언어죠. 그런데 우리 학생들은 거기서 두달만 지나면 현지 사람들과 대화를 합니다. 6개월이면 현지어로 성경을 가르치고, 1년이면 현지 사람 수준으로 언어를 구사합니다." 박 목사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와 봉사활동을 하는 학생들을 찾아가 1~2주씩 함께 생활하다 돌아오는 경우가 자주 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이 밀림의 물도 거림낌없이 마시는 것을 보고 놀랄 때도 많다는 것. 원주민들과도 아무런 거리감 없이 어울리면서 철저히 현지화하는 학생들이 대견스러울 때가 많다며 자랑이 대단했다. 박 목사는 "자기만 생각하면 그러한 오지에서 그처럼 헌식적인 자세로 봉사하기란 불가능하다"며 "자신을 버리는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봉사단 학생들은 남들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접하고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1년씩 해외에 체류하면서 신앙을 다지고 현지 문화까지 익힌 학생들은 10년이나 20년 후면 우리나라를 이끌 일꾼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덧붙였다. "해외봉사단 출신들, 나라의 일꾼 될 것" 지난해에는 그렇게 현지화된 가운데 1년을 보내고 돌아온 학생들이 파견됐던 국가의 문화를 재연하는 '컬쳐 2005' 행사도 열렸다. 오는 6월에는 '컬쳐 2006'이 열릴 예정이다. 학생들이 현지에서 익힌 언어 실력을 겨루는 영어 말하기 대회도 열린다. 해외 전도집회 등을 위해 연중 3분의 1일을 해외에서 보내는 박 목사는 올해도 러시아 · 케냐 · 남아공 등으로의 전도여행 일정를 잡아 놓고 있다. 1년의 3분의 1정돈느 국내에서 수시로 열리는 전도집회 강사로 활동하면서 보낸다. 그가 "기독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부담 없이 올 수 있게 해야 한다"며 대형 체육관에서 개최해 온 성경 세미나는 오는 5월 서울에 있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것으로 일정이 잡혀 있다. 국내외 전도 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 박 목사는 기쁜소식강남교회 목회를 이끌면서 신앙 관련 저술 등에 매달린다. 해외로 파송하는 선교사와 대학생 해외봉사단원들을 훈련하는 것도 중요한 국내 일정임은 물론이다. 기독교가 들어온 지 200년이 지난 우리나라는 1,000만 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기독교강국'이다. 교인 수로만 치면 세계 10대 교회 가운데 5개가 우리나라에 터를 잡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를 둘러싼 환경이 장밋빛 일색인 것만은 아니다. 교계 내부적으로도 적잖은 과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자기 나름의 인식을 갖고 있다.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얽히면서 한국 기독교계에 대한 걱정과 회의가 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언필칭 1,000만 명의 신도를 자랑하는 기독교를 둘러싸고 그러한 분위기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우려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장 위주의 목회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돼야 할 교회가 거꾸로 세상의 걱정거리가 되면서 지탄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신자나 목회자 모두 기도할 문제라고 봅니다. 종교개혁을 할 정도의 역량 있는 사람은 못 되지만, 저도 기도하면서 성경적인 교회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그렇게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갖고 있고요."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풍토 아쉬워" 그는 "오늘의 한국 교회들이 시급히 시정해야 할 현실적인 과제도 하나 둘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병 고침의 기적 등' 믿음의 결과물'이어야 마땅한 것들이 믿음의 증거나 목표로 둔갑하는 이해할 수 없는 풍토, 방언(신심이 깊은 사람이 기도 중 무의식저으로 내뱉는 일종의 사투리)을 구원받은 증거처럼 여기는 그릇된 인식 등을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박 목사는 "일부 교회나 기도원에서는 방언을 따로 가르치기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저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한테서도 지탄의 대상이 되는 교계 안팎의 문제점들은 시급히 시정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기성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다 보니 악의적 공격을 받을 때도 있더라"며 "그럴 때면 일체의 선입견에서 벗어나 서로 이해하고 포용하는 자세가 아쉽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 했다. 원문보기

(0KB) [1260] DATE : 2007-11-22 12: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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