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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복음집회 둘째날 - 진정한 회개, 그리고 구원
2005-11-01


지금 우리는 편안히 성경을 읽을 수 있지만,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될 때, 만일 구원을 받지 못하고 서게 된다면 그 옛날, 그때 내가 왜 말씀을 듣지 않았나?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때에는 후회를 해도 이미 소용이 없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먼저 회개가 되어야 구원이 이루어지죠? 진정한 회개란 그럼 무엇입니까?

성경을 보겠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창세기 4:3~5)


잘 보세요. 하나님이 어떤 것은 받았고, 어떤 것은 받지 않으셨다고 나옵니다.
둘 다 동일하게 여호와께 드렸지만, 어떤 것은 받고, 어떤 것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의 것은 열납치 않으셨어요. 왜 그랬습니까?

가인은 자기 자신을 믿는 자였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땅은 육신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땅에, 육신에 저주를 내리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교류가 끊어진 육신이란 고깃덩어리에 불과해요. 아무 것도 아니고, 죽으면 그냥 흙으로 돌아가는 유기물일 뿐입니다.
가인은 그 땅(육신)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제물을 받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육신에서 일어나지는 모든 생각들은 사단에게서 온 것입니다. 사단과 여자가 교제를 하고, 사단의 생각이 여자에게 들어갔을 때, 하나님으로부터의 공급이 끊어졌고, 그 순간 우리 영은 죽어버렸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생각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악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흔히 자기 속에 선이 있다고 믿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 생각에 착하고 싶고, 올바르고 싶은 욕구들을 선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원함이지 실제로 선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보통 “원함”이란 그것이 결핍되었을 때, 일어나는 욕구입니다. 없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말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나한테 다이아반지가 없어요. 그러다가 금은방을 지나면서 다이아반지를 보게 되면,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나한테 만약 똑같은 게 있다면 그걸 가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겠습니까? 없으니까 일어나지는 겁니다.
다시 말해 육신이 선하기를 바라는 욕구는 선이 없기 때문에 일어나지는 것이라는 얘깁니다.

내가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었다는 것이 인정이 되어지면, 그때 비로소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벨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가인의 위치에서 아벨의 위치가 되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회개”라는 것입니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 1:28)

합당치 못한 일을 누가 하게 했다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다는 말입니다. 왜요? 우리가 진정 합당치 못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시기 때문에요. 그리고 내가 합당치 못한 자인 것이 인정이 되고, 그래서 내 것이 버려지면, 회개가 되면,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역사를 경험할 수 있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 5:6)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매끈매끈한 자였습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에게 복을 내리려 했고, 에서는 털사람이었죠. 야곱은 자기 자신 그대로 아버지 앞에 나갔다가는 복은커녕 저주만 받을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 리브가의 한마디가 그를 절망에서 건져냈습니다.

“모든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야곱은 믿었습니다. 오직 어머니가 날 사랑하고 있다는 것, 그것 하나 믿었어요. 그 믿음이 그를 다 내려놓고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게 만들었고, 결국 야곱은 에서 대신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야곱을 두려움에서 건져낸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 강릉 복음 집회 ‘김선영 목사’ -


우리는 어제 사단의 정체가 우리 육신의 생각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혼돈과 공허, 육신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 속에 헤맬 때, 우리는 속 시원한 해답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런 자일 수밖에 없는 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셨기 때문이며, 그것은 절망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갈 조건이라는 것.
우리를 지으신 자를 온전히 믿으면, 우리에게 있는 문제들은 이미 우리들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문제의 모든 해답은 이미 하나님께 있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편안히 쉬고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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