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선교회에서 알립니다

NOTICE

주문진 집회 대미
2005-09-24
“한 사람이 와도 좋다. 아무도 오지 않아도 좋다. 예수님이 어느 마을에 들어가셨다고 하자. 거기서 예수님이 무엇을 하셨겠는가? 복음을 전하셨을 것이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자.”

강릉에서 30분을 꼬박 달려야 도착하는 바다 냄새나는 후미진 도시가 주문진입니다. 엠마오라는 촌으로 제자들이 걸어갈 때, 비록 그들의 눈이 가리워져 예수님을 감각치는 못했지만, 그 순간에도 예수님은 멈추지 않으시고 역사(history)를 계속 이어가셨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쌔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마가복음 10: 17~18)


죄인의 뜻이 무엇입니까? 죄를 짓고 있는 사람.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럼, 의인은 죄를 안 짓고 있는 사람인가요? 어떻습니까? 이것은 인간적 기준에서 내려진 정의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옮겨봅시다. 죄인은 “하나님을 떠난 자”를 일컫습니다.
이 마가복음 17절에 청년이 말하는 “선(善)”은 예수님의 관점에서의 “선(善)”과는 완전히 개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어찌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이렇게 말씀하셨죠?
선악과는 어땠습니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6)

하나님의 관점에 그것은 “정녕 죽는 열매”였지만, 여자의 관점에서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여자는 오직 자신의 관점에서 사물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여자가 과일을 먹고 나니까 선악의 기준이 생겼는데, 그 기준의 중심이 무엇이었습니까? 그 중심은 바로 “나” “내 생각”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하나님 한분 이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셨는데, 기준의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나”에게로 옮겨진 순간부터 인간은 결코 선(善)해질 수 없도록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그때, 세상에는 “죄”가 들어왔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과나무일지라도 그것의 성품이 씨앗일 때부터 이미 사과나무로 결정지었던 것과 동일한 이유로 “죄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간이 가진 선악의 기준이라는 것이 죄의 지배 아래 있으므로 그것은 “죄”일 뿐입니다. 인간이 단정내리는 그 어떤 선도, 선이 될 수 없고, 그 어떤 악도 악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그래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 위에 인간이 존재하는 그 모든 동안” 다시 말해 “세상” 가운데 인간은 “죄인”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대신 심판 받으신 이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마지막 한 방울의 피까지 모두 쏟아내셨고, 온 인류가 죄에서 해방되었음을 증거 하시기 위해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죄가 영원히 속해졌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손을 안 드시는 분도 계시는군요. 상관없습니다. 손을 드신 분의 죄도, 안 드신 분의 죄도 이미 예수님께서 다 씻어 놓으셨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믿으십시오. 그리고 구원을 받으십시오. 훗날 지금 이 자리에 오셨던 것을 기억하면서 왜 그때 구원을 받지 못했던가, 후회하시지 말고 지금 여기서 이 진리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 주문진 집회 “김선영 목사” -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진리(참된 이치)라고 합니다.
세상이 “죄악” 아래 놓여진 것도, 그 죄를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 것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 쉬운 구원을 왜 사람들은 받지 못하고, 부자청년처럼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돌아가야 되는 것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베드로 전서 5:8)

마귀 때문입니다. 창세기 3장에 여자를 속였던 그 간교한 마귀는 여전히 세상 속에 군림하면서 사람들을 하나 둘 씩 삼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은 분명 사람보다 영리하고, 능력 있는 존재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사단에게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마귀를 이기시는 주님이 저희 속에 거하고 계신다는 진리가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길 수 없지만, 주님은 이기신다고 했습니다.

작고 외딴 주문진의 한 홀에서 열린 집회에 주님은 “그의 이야기(history)"를 계속 이어가고 계셨습니다. 더욱 감사한 것은 시간이 지난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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