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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ICE

김욱용목사 성경세미나 둘째날 저녁 소식
2005-04-20
"올해는 한사람 한사람이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입은 복된 간증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마음을 흘러받아 형제자매들이 노동복지회관을 얻어 구역집회를 하게 되었다. 둘째 날 저녁 목사님은 죄가 무엇인지를 초점으로 말씀을 전하셨다.
                                         -김욱용목사님 말씀 중에서-


죄사함을 받으려면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잘못을 상대에게 했는데 제 3자에게 용서를 구한다면 말이 안 된다.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는 말은 하나님께 잘못했다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께 뭘 잘못했는가? 하나님께 잘못한 죄가 무엇인가?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으려면 이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죄를 용서받으려고 하지, 하나님이 생각하는 죄를 용서받으려 하지 않는다. 자기 양심에 꺼려지는 것을 사해보려고 하고 자기 마음하나 편하려고 하지 하나님이 불편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자기 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실 때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고 사랑의 대상으로 지으셨다. 마음은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을 담기위한 지은자의 그릇 같다. 하나님을 마음에 담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고 동행해야 하는데, 하나님을 저버리고 사단에게 속해 사단을 ?아 살게 되었는데 그것이 죄다.
요한1서 3장 12절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
악한자에게 속하여 있는 것이 악하다. 누구에게 속해 있냐. 누구의 마음으로 사느냐로 악한지 그렇지 않은지가 결정된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나 허랑방탕하게 살았다. 무엇이 방탕한가? 아버지를 떠난 삶 자체가 허랑방탕이다. 아버지를 떠나서 무슨 일을 하든 허랑방탕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죄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이 무엇을 악하게 여기는지 알려고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양심의 선악이 기준이 되어있다. 자기가 사망 중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자기를 하나님 앞에 세우려 않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에 자기가 선한 줄 알고 있다. 절대기준이 되는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아서 ‘나는 저보다 나아. 나는 저런 짓은 안하고 살았어.’ 하고 말한다. 자기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붙잡는 것이 다 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그때 누구도 같이 서 줄 수 없다. 지금 하나님 앞에 서야 한다.
율법은 사람이 결코 지킬 수 없는 선한 법이다. 율법을 준 뜻을 모르고 자기식으로 율법을 생각한다. 예를 들면 ‘죄 안 짓고 착하게 살기를 원하는 줄 안다. 그래서 다 지킬 수 있다.. 착하게 살려 노력하면 되지.‘  하나님은 죄 안짓고 착하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착하게 살면 하나님이 복 주실 줄 알고 있는데, 사단이 그렇게 속이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첫째, 율법 책에는 613가지의 계명이 있는데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해야 하고 둘째, 항상 해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렇게 못하면 그 사람은 저주아래 들어가고, 그 사람은 사망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법을 주셨다. 지금부터 3500년 경에 주셨는데, 지금까지 한사람도 지킨 사람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른다. 지키지 못할 법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지켜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 법은 하나님만 지킬 수 있는 거룩한 법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이 율법을 주셨는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인간이 그 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인 것을, 죄인인 것을 깨우쳐주려고 주신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관대하기에 괜찮은 사람으로 여긴다. 자신이 사망 가운데 있는 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지옥형벌이 기다리고 있는 줄 모르고, 괜찮은 사람인 줄 알고 살기에 율법을 주셔서 자기를 깨닫게 하셨다. ‘내가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구나. 마귀자식이구나. 사망 가운데 있구나‘를 깨닫게 하기위해 율법을 주셨다.
말씀 앞에 서보면 자기가 얼마나 형편없고 야비하고 더러운지 깨닫는다. 이런 사람은 내가 뭘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우리는 죄인이라는 것은 사망이 나에게 임한 것을 말한다. 저주 가운데, 멸망 가운데 있는 것을 말한다. 살길은 다만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길이다. 하나님이 살려주셔야 사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은혜를 못 입고 답답한 가운데 있냐면, 자기의 옳은 생각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창세기 3장 9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있느냐”
하나님이 아담을 찾은 이유는 아담을 심판하시려고 한 것이다. 심판을 해야 죄에서 해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아담을 죄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 부르셨다.
창세기3장 12절 “아담이 가로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의 대답은 자기 죄를 가볍게 하려고, 자기가 한 것을 정당화하려고 하고 있다. 자기가 죽게 되었는데 자기 죄를 사함 받으려 않고, 자기 죄를 가리고 정당화하고 있다. 동기야 어떻든 먹었다는 것은 사실이고 형벌은 치러져야 한다. 그런데 죄를 가리는데 급급하다.
오늘날 인생이 그렇다. 죄 때문에 지옥가게 되었는데, 죄 때문에 망하게 되었는데, 인생이 풀리지 않고 곤고하고 괴로운데, 그 죄를 정당화하고 가리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며 상황윤리를 붙들고 있다.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신 것은 책망하려고, 벌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죄에서 건져주시기 위함이었다. 아담은 자기 죄를 변명하고 가리려고 하고 가볍게 해 보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야 되는 것이 아니다. 누가 은혜를 입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  죄를 변명하려고 하기에 은혜를 못 입는다. 주님이 우리 죄를 사해주려 오셨다. ‘나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은혜를 입을 수 있다. 하나님 앞에 더럽고 추한 인간으로 나오면 긍휼을 입을 수 있다.
창세기 3장 7절“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벌거벗고 있었지만 빛의 옷을 입고 있었기에 문제가 없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실과를 따 먹으면서 그들의 수치가 드러났다. 벌거벗은 사실을 알게 되자 무화과잎을 따서 치마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 치마는 수고하고, 땀을 흘리고, 정성을 들여 만들어야 하는 옷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수고해도 그들의 수치를 안벽하게 가릴 수 없고, 빛 가운데 나가면 말라서 떨어질 수밖에 없어 그늘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 빛 가운데 서면 그것은 다 벗어져 버린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신분적으로 죄인으로 출생했기에 너나없이 더럽고 추하고 형편없는 악한 사단의 마음으로 태어났다. 그늘에서 곧 이 세상에서 나뭇잎이 괜찮지만 빛 되신 하나님 앞에 나가면 나뭇잎은 말라버린다. 곧 초라한 죄악된 인간으로 설 수밖에 없다.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하든지 죄를 가볍게 해보려고, 잘못을 가려보려고, 허물과 수치를 덮어보려고 애썼지만 다 무익했다.
그런데 21절에 보니“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하나님이 준비한 옷이 있었다. 가죽은 소나 양을 쌌던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그 가죽을 위해 짐승이 죽어야만 했다. 죄는 인간이 졌는데 대신 짐승이 죽었다. 그 가죽옷이 인간의 수치를 가렸다.
우리가 가려야하는 것이 죄인데 우리 스스로 도저히 해결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을 보내시고 죽게 하셔서, 우리의 수치와 허물을 가리고 덮으셨다. 이것을 가리기 위해 예수님은 생명을 버렸다. 우리의 수고가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아야한다. 우리는 우리인간에게 힘이 있는데, 그게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혜도 한계가 있다. 반대로 하나님의 힘,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다. 나는 한계가 있기에 내 죄를 씻을 수 없고,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슬픔과  근심과 두려움과 쓸데없는 생각을 ?아버릴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힘이 한계가 없고, 그 능력에 한계가 없기에 우리 죄를 깨끗케 하시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거룩하게 하시면, 온전케 하시면 그렇게 될 수 있다. 그 힘을 끌어당기게 하는 힘이 믿음이다.
우리는 죄를 짓기에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아담처럼 내가 한 일을 정당화하고, 가리려하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지 말고, 그분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려고 오신분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 내가 이런 사람입니다.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하며 나가야 한다.
                                         -김욱용목사님 말씀 중에서-


말씀 앞에 자신의 모습이 벌거벗겨져, 긍휼을 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를 바라시는 목사님의 간절한 목소리가 사람들의 마음에 울려져, 많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고자 손을 들었다. 내일 복음이 저들을 죄에서 구원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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