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대 전도 집회를 뒤이어 서울 각 지역교회에서는 후속집회를 하고있다. 강남지역에서는 박옥수 목사님을 모시고 계속해서 성막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말씀을 듣고있다. 성막에 대해 제대로 얘기하려면 한 40~50시간은 필요하다고 목사님은 말씀하신다. 성막에 대해 요만큼 들었는데도 성막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나 놀랍고, 신비하고, 감사하다.
매시간 구원을 받으신 분들의 간증을 들으며 우리 모두는 한 없는 감사함에 마음이 녹아내리고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성막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그 사랑에 감격한 새 생명들의 간증에 후속집회는 무르익어간다.
*민일선(기쁜소식 강남교회)
"제가 처음 교회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동네 교회에서 크리스마스때 연극을 보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면 왠지 즐겁고 기쁨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저희 할머니께서는 불교를 믿으셔서 제가 교회에 나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시고 심한 꾸중을 하셨습니다. 교회에 가면 문을 잠그고 안열어 준다는 말씀에 교회에 안 나가게 되었는데요, 그 후 성인이 되어서 교회에 나갔는데 십계명을 지키기가 어렵고 죄를 짓지 말라고 하는데 나는 자꾸 죄를 짓게 되었습니다. 죄가 내 마음을 너무 무겁게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교회를 안나가면 죄에서 자유로울텐데, 왜나가? 안나가고 말지.` 하며 안나갔습니다.
그러나 살아가면서 제 의지대로 세상이 안되는 것을 느끼며 신의 존재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을 만든 참된 신이 있다면 "내가 너희를 창조했다." 고 왜 근거를 남겨두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하던 중에 작년 여름 방학 때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성경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재미로 읽어 나가다가 정말 인간을 창조한 신이 하나님이시고 인간에게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 성경책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새벽 3시, 4시, 5시가 되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제게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해가 되는데 신약에 와서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갔습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신가? 왜 예수님이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리셨는가? 한 사람의 예수님이 죽었는데 왜 모든 인류가 구원받았다고 하는가? 그래서 신우회 선생님께 물어보면 "어머 그게 왜 이해가 안돼? 안믿어져?"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어떤 선생님은 "그 문제를 놓고 기도해보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문제를 놓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정말 믿음을 갖고 잘 믿고 싶습니다. 예수님이 제가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또 인터넷으로 들어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봐도 지식으로, 머리로, 논리적으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는 전혀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학교 선생님 중 한 분이 박옥수 목사님 성경 세미나에 와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수요일 집회에 나갔습니다. 목사님 설교가 끝나고 상담시간에 옆에 앉은 선생님께서 신앙상담을 받으라는 권유를 해서 거의 끌리다시피 해서 나가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또 논리적으로,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에 와 닿지는 않았습니다.
마지막날 목사님께서 레위기 4장 13절에서 회중의 속죄제를 지낼 때 수송아지를 잡아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수송아지에게 옮겨지고 그 피를 번제단에 쏟으면 그들이 죄사함을 얻는다는 말씀과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이 예수님에게 세례를 주는 순간, 전 인류의 죄가 예수님께 옮겨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가 씻어졌다는 말씀을 듣는 순간, 개인 상담을 받았을 때 그 동안 목사님이 주신 말씀과 연관이 되어서 그동안 이해가 안되었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분명하게 이해가 되고 그것이 나를 위한 십자가 사건으로 나의 죄를 씻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나의 구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가슴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평소에 부르던 찬송가가 제 마음에 기쁨과 눈물이 되어 제 가슴을 짜릿하게 조여왔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은혜와 긍휼을 베푸셔서 나의 주님을 깨닫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아직도 말씀이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주님이 깨닫게 해주실 것을 믿으며 앞으로 제 삶을 예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목사님 말씀중 "다른 모든 사람이 볼 때 그냥 바위가 어느 조각가의 눈에는 천사로 보여 바위를 깨어서 천사를 만들었던 것처럼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어느 날, 갈릴리 바닷가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밤이 새도록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청년 하나가 말씀은 안듣고 열심히 그물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어부인 베드로였습니다. 다른 모든 사람의 눈에 그는 어부일뿐이고 베드로 자신이 자기를 보아도 무식한 어부일 뿐인데 예수님은 그를 전혀 다르게 보셨습니다.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보셨습니다. 어느 날 배추밭에 갔는데 배추벌레 한마리가 엉엉 울고 있었어요. `야, 배추벌레야. 너 왜 우냐?` `나는 이게 뭐예요, 메뚜기처럼 뛰는 다리도 없고, 꾸물꾸물거리고, 나는 너무 못생겼어요. 나는 슬퍼요.엉엉.`
여러분들! 이 배추벌레 위로할 자신 있죠?
`울지마, 배추벌레야. 너는 조금 있으면 저렇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돼. 저 흰나비예쁘지? 넌 저렇게 될꺼야.` `농담하지 마세요, 나같은게 어떻게 저렇게 돼요? 꿈에서도 불가능해요. 나는 어디까지나 배추벌레예요. 나 위로 하려고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나도 태어날 때부터 나비로 태어났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는 날 때부터 배추벌레란 말이예요.`
제가 나비에게 물었습니다. `나비야, 넌 처음부터 나비였니?` `아뇨, 처음엔 배추벌레였어요.` `말도 안돼, 배추벌레가 어떻게 나비가 돼? 나비 너랑 목사님이랑 짜고 그렇게 말하는거지?` `배추벌레야, 좀 믿어! 정말이야, 나도 벌레였어. 나중에 이렇게 나비가 된거야.`
예쁜나비가 처음부터 되는게 아니라 처음에는 나비 근방에도 안간 배추벌레였습니다. 그 추하고 징그러운 벌레가 변하여 예쁜나비가 된 것입니다. 배추벌레가 자기 모양을 볼 때 어떻게 자기에게서 나비의 형상을 발견했겠습니까? 전혀 안보이죠. 그러나 지금은 징그럽고 꿈틀거리고 배춧잎을 먹고 살지만 언젠가 어느 찬란한 봄날 아침 그는 한마리의 나비가 되어서 날개짓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죄악을 벗어버리는 순간 여러분은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배추벌레는 꼭, 반드시, 나비가 됩니다. 배추벌레로 태어나는 순간, 이미 나비가 된 것입니다. 배추벌레가 낮잠을 자고, 배추벌레가 놀아도, 그는 나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양이었든지, 우리가 가만히 있어도,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의 형상이 되는 것입니다. 정금 한 달란트의 모양이 어떠하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모양이었든지 하나님은 쳐서 찬란한 빛을 비추는 등대를 만드시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