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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룩진 삶의 기록을 버리고 / 김영중 (경산제일교회)

작성자 : GNN (119.64.207.248) 작성일 : 2010-10-07 19:47:24 조회수 : 4184


얼룩진 삶의 기록을 버리고


/ 김영중 (경산제일교회)


♣누군가가 지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 아버지와 형제가 하루아침에 뒤바뀌면서 어둡고 우울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이복형제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찌든 삶을 살면서 세상이 싫고 원망스럽고 불만스러웠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도 없었고, 교회에 가본 적도 없었고, 성경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신앙상담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초등학교 때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들었는데, 그 기억이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진화론을 믿지 않고 창조론을 믿었다. 자연만물을 보고, 산을 보고, 나무를 보고, 뜨고 지는 해를 보고, 비를 보고, 식물이 자라는 것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 중에 지문이나 목소리나 뭐나 똑같은 사람이 없는 것을 보면서 ‘분명히 누군가가 만들었다. 누군가에 의해서 설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우연으로 그렇게 되었다는 말이나 원숭이가 사람이 되었다는 말에는 믿음이 가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가 지었다. 그분이 하나님이다.’고 생각했다.



♣그 아름답던 한 소녀가 저래 늙어 죽는구나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영혼이 뭐냐? 지성, 감성, 생각,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 뭐 그런 거냐?’
정확한 용어를 갖다 붙일 수는 없지만 영혼이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도 내 마음에 분명하게 인식되었다. 어릴 적에 내 주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는 모습도 많이 봤고, 할머니가 문을 잠그고 방안에서 약을 드시고 자살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아름답던 한 소녀도 늙어서 저렇게 죽는구나. 한 여인이 참 가난하게 태어나서 불행한 삶을 살다가 인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슬프게 죽었다.’는 서글픔이 내 마음을 뒤덮었다.



♣장의사 생활 3년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각설(却說)하고, 제대하고 직장생활하면서 참 괴로웠다. 도덕적이고 양심적으로 살며 죄를 안 짓고 싶었는데, 노력하고 다짐해도 안 됐다.

그렇게 다짐하고도 돌아서서 죄를 짓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다.

나는 비록 나이는 많이 먹지 않았지만, 밑바닥 인생도 경험해봤고, 나이 드신 분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살았고, 장의사 일도 3년 동안 하며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도 많이 보고, 시체도 많이 다루어보았다. 감각 없고 앙상하고 쭈글쭈글한 피부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허무함을 깊이 느꼈다. 관 속에 들어가는 시체를 보면 참 허무했다. 또 이장을 하다 앙상한 뼈밖에 없는 것을 보면 참 서글펐다. 정말 아무것도 없고, 흙밖에 없었다. 사람은 역시 흙으로 만들어져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이론’이 아닌 ‘실제’로 느껴졌다.

‘지금 살이 붙어 있다고 영원할 것 같지? 그러나 기고만장하고 꺾이지 않던 인생들도 다 썩어 뼈만 남는다. 결국 인생은 별 거 아니야. 가치 없어.’

죽은 자를 앞에 두고 상주는 슬퍼서 우는데, 일꾼들은 돈 한 푼 더 뜯어내려고 수작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묘했다.

‘어차피 인간은 죽는다. 죽는 거는 죽는 거고 사는 것은 사는 거다. 죽는 사람은 죽고 사는 사람은 살고, 밀려가고 내 뒤에 또 따라오고,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고….’
성경 전도서 말씀에 ‘인생이 헛되고 헛되다. 인생은 풀과 같고 꽃과 같다.’고 한 것처럼, 인생이 참 허무하고 막연하고 공허했다. 그렇다고 내가 자폐증환자처럼 집에서 두문불출한 것은 아니다. 사회생활하면서 깍듯이 예의 지키고 내 할 일 하고 내 보수 받고 웃어가면서 살았다. 하지만 내 마음에는 항상 공허가 떠나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몸도 멀쩡하고 사회생활도 멀쩡하게 하는데, 마음의 공허를 채울 수 없었고, 텅빈 마음은 고통 그 자체였다.



♣계속 되는 교제

그러던 어느 날 경산제일교회 문인환 형제를 만났다. 세 번 만났는데, 첫 만남에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지식적인 일반적 기독교인의 이미지를 받았다. 나는 원래 기독교인 알기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따져서 결국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나면서 교제를 하게 되었는데, 그는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했다. ‘우리 교회는 다르다.’고 하고, ‘불치의 허리병도 치료받았다.’고 간증도 했는데, 나는 반신반의했다.

세 번째 만났을 때, 같이 화원 쪽에 갈 일이 있었는데, 한 시간 거리였다. 과장님이 없어서 문인환 형제가 운전했다. 문 형제는 차 안에서 본격적으로 전도하기 시작했다. 니고데모, 소경, 절뚝발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 사마리아 여인에 대해서 쭈욱 얘기를 했다. 나는 “아, 그러냐?”고 하면서 들었다. 하지만 개신교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인간이 어떻게 구원을 논할 수 있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과 의지에 의한 것이라 하나님이 좌지우지 하는 것이다.”

고 반발했다. 문 형제는 화원에 가서 일하면서도 일은 뒷전이고 성경 말씀을 계속 이야기했다. 돌아올 때에도 말씀을 계속 전하다 길을 잘못 들었다. 그래서 빙 돌아서 와야 해서 더 많은 시간이 걸렸는데, 나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내가

“그래!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확정시켜 놓고 인생을 살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되겠냐?”
고 하자 “바로 그거다!”라고 했다. 그 날 나는 그와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었지만, 내 마음에 있는 사람에 대한 불신 때문에 더 이상 이야기하기가 싫었다. 나나 나에게 상담해주는 사람이나 모두 악하고 추하고 더러운 인간일 뿐인데, 그 둘이 이야기한다고 무슨 진리가 나올까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6일 동안 할 짓 안 할 짓 다하고, 할 말 안 할 말 다하고 살다가 주일이 되면 양복 입고 성경 들고 거룩한 척하며 교회에 가는 기독교인의 모습이 아주 위선적으로 보여, 이야기하는 것이 거북스러웠다. 옷 한 벌과 성경 책 하나로 자신의 모습을 덮으려고 하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의 모습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내가 못나고 부족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지만, 교회는 부자들이나 권력 있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곳이란 이미지를 지울 수 없었다. 인터넷 채팅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더니, 그는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제1권을 줬다.



♣아름다운 말로 포장한 거짓 위로 같은 건 없었다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을 읽어보니까, 율법과 믿음에 관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어, 읽다가 덮었다. ‘율법으로 구원 못 받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내용의 책은 기독교 서점 가면 많았는데, 전에 그런 책을 읽어봤을 때, 내 마음에 정확한 답을 주지 못했었다.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들어가 기쁜소식선교회를 치니깐 바로 떴다. 설교를 들어봤다. 그때는 설교하시는 분이 박옥수 목사님인지 몰랐다. 그런데 설교가 내 마음을 박살내기 시작했다.

‘마음을 비워라! 마음을 꺾어라! 생각을 버려라!’

집중적으로 ‘왜 자기 생각을 따라 사느냐?’고 하시는데, 나한테 해주시는 말씀 같았다. 내 세계와 내 생각이란 벽과 막을 쌓아놓고 거기에 둘러싸여 마음을 열지 않고 살아온 나는 말씀을 들으면서 뜨끔하게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말씀을 듣고 나니 시원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런 말을 해주기를 바랐었고, 또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박 목사님이 그런 말씀을 해주신 것이었다. 또 박 목사님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속에서 나오는 것은 다 더럽고 추한 거다. 노력한다고 되냐?’는 말 때문이었다.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설교가 마음에 들었다. 좋은 말과 아름다운 말로 포장해서 사람을 위로하려는 게 아니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보면서 속이 시원했다. 인터넷을 통하여 설교를 들으면서 ‘죄 사함 거듭남의 비밀’ 책도 다시 펴서 읽어 봤다. 속죄제도 나오고 예수님이 죄를 다 사해놓으셨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없네요

만남을 거부했던 문 형제에게 한번 만나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니까 그는 좋아하면서 일 마치고 찾아왔다. 아파트 앞 벤치에 앉아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담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가 세상인데, 우리는 그 속에 태어나서 죽는다. 이 세상의 과거 죄, 현재 죄, 미래 죄가 다 예수님의 피로 씻겼다. 요한복음에 보면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다 이루었다.’고 기록해놓았다. 죄가 있나, 없나?”

그 말을 듣고 논리적으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답이 분명한데 내가 달리 뭐라고 하나? “이론적으로는 없네?” 그렇게 대답했다. 문 형제는 어떤 팸플릿에 그림을 그려가며 설명을 했는데, 이야기를 마치고 나에게 ‘가져가서 보라.’고 했다. 나는 ‘다 들었으니 필요 없다.’고 하고 버렸다. 그런데 집에 가서 들었던 이야기를 나 혼자 정리하려고 하니까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들어서 그런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밤에 교제했던 곳으로 다시 가서 쓰레기통을 뒤져 그 팸플릿을 주워왔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이 사했다면 사한 거지!

퇴근한 후에는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까 말씀 듣는 것을 낙으로 삼고 살았다. 성경 세미나, 대전도 집회, 수양회 등등 녹화되어 있는 것이 많이 있었다. 계속 듣다보니 말씀이 마음에서 조금씩 깨달아지고 이해되고 믿어졌다. 마음이 약간씩 벅차올랐다.
계속 마음이 벅차오르더니 몇 달 지나자 알 듯 모를 듯하고, 곧 구원에 이를 듯 말 듯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루는 일하러 갔다 와서 인터넷으로 설교를 듣는데, 그 중에 한 마디가 내 마음에 임했다.

‘하나님이 죄를 사했다면 100% 사한 것이다. 하나님은 99%만 사해놓고 1%는 남기시는 분이 아니다. 왜 인간적인 생각을 하냐?’

나이 드신 목사님이 강하게 말씀하시는데, 그때 내 마음에

‘그래 하나님이 사했다면 사한 거다. 천지만물을 만드신 그 하나님이 사했다면 사한 거지. 거기에 대해서 무슨 반문이 필요하겠냐!’
는 마음이 들면서 정말 기뻤다. 이때까지 들은 지식이 다 풀어지면서

‘아, 그렇구나. 예수님이 사해놨구나! 인간의 방법과 노력으로 안 되니깐 예수님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려고 했구나. 그 마음이구나!’
하고 깨달아졌다. 그것을 알게 되자 가슴이 벅찼다.

‘뭔가 알았다. 아! 이거구나.’

나는 소심한 사람인데, 웃음이 나고 고함을 지르고 싶을 만큼 기분이 정말 좋았다. 세상 살면서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하다

그때부터 내 마음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전에는 성경 말씀을 읽어보면 율법적이고 행위적으로 보였다. 사랑하라고 하는데 나는 사랑하지 못하고, 하지 말라고 하는데 다해서 괴로웠다. 그런데 구원받고 죄 사함이 믿어진 후 성경을 읽어보니 죄 사함에 대한 단어가 구석구석에 깔려 있었다. 전에는 전혀 안 보이더니 구원받고 보니 그게 눈에 뜨여 신기했다. 그 마음을 가지고 계속 말씀을 들었는데 너무 기쁘고 벅차고 좋았다. 혼자 삼키고 있으려니 답답했다. 일하러 가서도 아무나 붙잡고 이 사실을 알리고 싶었다. 세상 친구한테 얘기해 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는 잘 알아듣지를 못했다. 나는 말이 안 통해 참 답답했다.



♣이왕 온 거 한번 들어나보자

교회에 나오는 부분은 아주 힘들었다. 어색하고 부담스러웠다. 그래도 나 혼자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역부족이라는 것이 깨달아지고, 혼자 마음에 쥐고 있다는 것이 답답해서 안 되겠어서 수양회 복음반 말씀 중 뒷부분에 있는 교회에 대해서 하는 설교들을 쭉 들었다. 강도 만난 자가 사마리아 인을 만나서 주막에 맡겨지고 상처를 치료받는 비유의 말씀을 듣고, 주막은 교회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말씀을 들으면서 교회에 나갈 수 있는 담력이 생겼다.

그래서 주일 저녁 예배에 참석하려고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때 그라시아스 합창단 초청 예배에 가고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도 또 어디 가고 없어서 참석하지 못했다. 드디어 세 번째, 어느 수요일 저녁 예배에 처음으로 참석했다. 참 부담스러워서 중간에 나가고 싶었다. 나가려고 뒤를 한번 돌아봤는데, 마음 한 편에 ‘이것도 사단이 주는 생각이다. 이왕 온 거 한번 들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라 사단이 주는 생각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말씀이 커지고 사단이 넣어주는 생각이 희미해졌다. 그 때부터 나는 계속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막상 교회에 나와서 형제 자매님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니까, 정말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거듭난 성도들 이미지가 느껴졌다. 교회 중심으로 생활하며 복음 전하려고 뛰어가는 모습들을 보니까 참 아름답게 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자는 누구나 다 변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가난한 자나 부한 자나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병든 자나 병들지 않은 자나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는 자는 변했다. 그걸 어떻게 알았냐면 나 자신을 보고 알았다. 난 절대 바뀌지 않을 것 같았는데, 죄 사함을 마음에 믿자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봐도 놀라웠다. 그때 나는 알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시구나. 어떠한 사람 속에 들어가도 말씀은 그 사람을 변화시키시는구나.’

내 겉모습이나 형편이야 그대로지만 마음은 참 많이 변했다는 것이 아주 감사했다.



♣다시 얼룩진 삶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정말 귀한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를 떠나 지난날 내 얼룩진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제대 후 9년 동안의 삶을 일지에 다 적어놓았었다. 하루 동안 뭘 했고,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떤 죄를 지었으며…. 그 일지를, 올 4월에 다 갖다 버렸다. 세상에 얽매여 있던 얼룩진 내 삶의 기록이자 과거를 잊고 내다버리는 심정으로 과감하게 버렸다. 정말 하나님이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에 감사하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